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르웨이 침공 (문단 편집) === 영국 측 배경 === 문제는, '''영국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전시 거국내각에 참여한 대독 강경파인 해군성 장관 '''[[윈스턴 처칠]]'''과 프랑스 수상 [[폴 레노]](Paul Reynaud)가 이를 주도하고 있었는데, 해상투사능력이 부족한 프랑스의 레노보다는 막강한 해군력을 지닌 영국의 처칠이 더 주도적인 위치에 있었다. 사실 영국은 노르웨이를 우호적인 중립국으로만 묶어둬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겨울전쟁]] 발발 이후 '''독일과 소련이 공동으로 스칸디나비아를 침공'''할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이를 막기 위해 미리 스칸디나비아에 군사거점을 선점하자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더 나아가 아예 소련과 전쟁 중인 핀란드에 파병하자는 의견도 나왔으나 이를 위해서는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을 통과해야 했다. 이들 국가들은 정부차원에서 난색을 표했다. 민간 차원에서는 핀란드에 의용군도 파견할만큼 소련의 핀란드 침공에 강한 반발을 가졌으나 스칸디나비아 각국 정부는 소련을 크게 자극하지 않기 위해 고심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직접개입은 소수 의견에 불과했다. 더욱이 1940년 3월에는 핀란드가 소련과 강화회담에 나서 [[겨울전쟁]]이 종결되자 연합국의 스칸디나비아 반도 개입 명분이 크게 사라졌다. 하지만 폴란드가 무너지며 영국, 특히 처칠은 이제 체면이나 국제법 그딴거 다 버리고 나치와 전쟁을 생각중이었다. 나치에게 철광석을 판매하는 스웨덴이나 스웨덴산 철광석의 수출항인 노르웨이나 다 끊어버리려 한 것이다. 물론 과감함과 별개로 1차 세계대전 때처럼 판단능력은 떨어져서, 파이크 작전 등 나치에게 물자를 공급하는 소련을 폭격한다 등의 헛발질도 많았다. 이랬으면 정말 큰일날 수도 있었던 것이, 저러면 소련이 독일에 붙어 그대로 추축국을 형성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실행되기 직전 독일의 프랑스 침공이 시작되어 취소되었다. 따라서 알트마르크 호 사건은 독일만이 아니라 영국도 자극하였고, 영국군은 비상시 노르웨이 일대에서 수행하기로 한 윌프레드 작전(Operation Wilfred)과 R4 계획(Plan R4)의 실행을 준비했다. 윌프레드 작전은 나르비크 항구부터 시작해서 독일로 이어지는 '''노르웨이의 영해가 잔뜩 포함되는''' 노르웨이-독일 철광석 수송항로를 '''[[기뢰]]로 도배'''해버리는 것이었고, R4 계획은 한술 더 떠서 [[해병대]]를 투입해 '''노르웨이 본토를 침공'''하여 나르비크를 중심으로 한 노르웨이의 철광석 수출 항구와 연결철도를 모조리 파괴해버리는 것으로, 노르웨이가 계속 저항할 경우 트론헤임(Trondheim)과 [[베르겐]](Bergen)도 같이 점령하기로 계획되었다. 이러나저러나 노르웨이는 결국 침략받을 운명이었다. 단, 영국의 침공 계획은 독일과 달리 노르웨이 전토 점령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독일로 철광석이 수출되는 기반시설 및 관련 지역에 국한시켰다는 점에서 조금은 낫다고 할 수 있다. 영국군의 윌프레드 작전은 4월 5일에 발동되기로 하였으나 이것이 지연되어 최종적으로 '''4월 8일'''로 결정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